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기입니다. 고려 초기라 하면 강감찬, 서희 정도밖에 몰랐는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강조와 같이 새로운 인물들에 대해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오늘 살펴볼 지채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제2차 여요전쟁 때 고려의 국왕 현종을 외로이 지켜낸 영웅인 지채문 장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경을 지키는 지채문
지채문은 봉산 지씨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현종 시기에 중랑장으로 임명된 그는, 거란의 2차 침공이 시작될 당시, 화주에서 고려의 동북면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강조가 이끄는 고려의 주력부대가 통주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제2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서경이 위험해졌습니다. 현종은 지채문에게 서경을 지원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거란군의 진격을 두려워하던 서경의 관리들은 고려의 지원군으로 온 지채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지채문은 서경 내부에 있던 지인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겨우 서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요나라 황제 성종은 거란인 유경과 통주에서 생포한 감찰어사 노의를 서경으로 보내 항복을 요구합니다. 서경유수 원종석은 항복을 원했습니다. 지채문은 반대하였으나 원종석은 성종이 보낸 두사람에게 항복하겠다 말합니다. 지채문은 거란의 사절로 온 노의와 유경을 쫓아가 노의를 죽입니다. 함께 있던 유경은 겁에 질려 달아나지만 지채문이 쏜 화살에 등을 맞고 죽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원종석은 지채문을 죽이라 명하지만 명이 서지 않습니다. 서경의 대장군 정충절은 지채문과 힘을 합쳐 서경을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 때마침 동북면 도순변사 탁사정의 부대도 서경에 합류하면서 힘을 보탰습니다. 이들은 항복을 주장했던 원종석을 참수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굳건히 합니다.
지채문은, 거란은 서경의 군사들이 항복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유인술을 써서 거란군을 물리치자고 제안합니다. 거란군의 한기와 울름은 서경으로 향합니다. 성문은 활짝 열려있었으며, 성문 앞에는 지채문이 마중나와 있었습니다. 거란군이 지채문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자 지채문은 성문을 걸어잠그고 그들을 공격할 것을 명합니다. 울름의 군사는 전멸하고 한기는 도망가다 지채문의 화살을 맞고 죽습니다.
이에 분노한 요나라 황제 성종은 전군에 총공격을 명합니다. 지채문은 현종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개경으로 떠납니다. 남은 서경은, 기존에 서경을 지휘하던 탁사정 이외에도 승병부대를 이끄는 법언, 발해의 왕손 대도수 등이 합류하여 거란과 맞섭니다. 거란의 총공격에 탁사정은 도망을 가고 법언 부대는 대패했으며 대도수는 사로잡히고 맙니다.
성종은 서경을 완전히 함락시키지 못했지만 군량 보급이 불안했고, 후방에서 양규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개경으로 가서 현종을 사로잡으려고합니다.
현종을 호위하는 지채문
지채문의 보고를 받은 고려의 조정은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대다수의 관리가 거란에 항복하자고 하였으나 강감찬만이 거란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합니다. 그는 국왕인 현종에게는 잠시 위험을 피해 몽진을 떠날 것을 권합니다. 현종은 지난날 이원과 최창이라는 인물이 자신을 호위하겠다고 나섰다가 도망가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했습니다. 이때, 지채문이 현종을 호위하겠다고 나섰고, 이를 본 현종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지채문의 호위를 받으며 개경을 출발한 현종 일행은 다음날 단조역(경기도 이천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왕의 피난을 도와줘야 할 단조역의 역졸들이 갑자기 현종을 향해 활을 쏩니다. 지채문은 현종을 막으며 화려한 활솜씨로 역졸들을 물리칩니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남쪽으로 내려가 창화현이라는 마을에 도착합니다. 창화현에서는 고을 향리라고 주장하는 사람 한명이 갑자기 나타나 겁도 없이 현종을 조롱합니다. 또한 한밤 중에 병사들을 데리고 현종을 습격합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현종의 신하들과 일꾼들은 모두 왕을 버려둔 채 도망칩니다. 이때 현종의 곁에 끝까지 남아 필사적으로 그를 지킨 것이 지채문 장군이었습니다. 현종은 지채문 덕분에 겨우 창화현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공진의 등장
겨우 한숨을 돌린 현종의 앞에 이번에는 과거 함부로 병사들을 움직여 동여진의 사람들을 죽인 죄로 유배를 갔던 하공진이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현종은 혹시라도 하공진이 과거의 일로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러 오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하공진은 오히려 그런 현종을 안심시키며 자신이 직접 요나라의 성종을 만나 그들이 돌아가도록 설득할테니 허락해달라 청합니다.
현종의 허락을 받은 하공진이 북쪽으로 향하던 중 현종을 추격하던 거란군의 기병을 만납니다. 깜짝 놀란 하공진은 그들에게 자신이 고려의 사신이라고 말한 후 추격을 멈추고 같이 개경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합니다. 이때 만약 하공진이 아니었다면 현종을 추격하던 거란군에게 현종이 잡혀 포로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하공진이 고려를 구해낸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공진은 요나라 황제 성종을 만나, 이미 고려의 국왕이 남쪽 수천리 밖으로 달아났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요나라의 대군은 보급문제와 후방에 있는 고려군의 거센 압박으로 버티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려의 국왕이 달아났다고 하니, 성종은 하공진의 말만 밑은 채 개경을 약탈한 후 병사들을 물려 철수하기 시작합니다. 하공진의 기개에 반한 성종은 하공진을 인질로 잡는데요, 그를 끊임없이 회유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하공진을 참수합니다.
현종의 위기
다시, 현종과 지채문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현종은 하공진의 노력으로 요나라가 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기에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합니다. 안성에 도착했을 때는 그를 따르던 유종이라는 신하가 안성이 자신의 고향이라며 마음대로 현종의 말안장을 뜯어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천안에서는 그동안 현종의 곁에서 충신인 척하던 김응인과 유종이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광주에서는 길이 어긋나면서 왕후와 헤어지는 위기도 있었으나 다행히 지채문이 요탄역에서 왕후를 찾아 무사히 모셔왔다고 합니다.
여향현(지금의 충남 홍성군)에 이르렀을 때는 그때까지 현종을 따르던 병사들이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따라가겠다며 파업을 선언하는 사건까지 생깁니다. 이때도 지채문이 현종에게, 그동안 고생한 병사들에게 상을 내리도록 권하면서 겨우 병사들을 달래는 데 성공합니다. 삼례에서는 전주절도사 조용겸이 현종을 옆에 끼고 자신도 강조처럼 고려의 권력자가 되어보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이때 지채문은, 조용겸이 현종을 만나지 못하도록 현종이 머무는 전각의 문을 굳게 지키다가 조용겸의 부하들 중 한명을 설득해 그들이 더이상 조용겸을 따르지 않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현종은 이번에도 지채문 덕분에 위기를 넘기며 전주를 빠져나갑니다.
현종을 지키는 데 성공한 지채문
이후 나주에 도착한 현종은, 순찰대가 거란의 사절을 보고 거란의 병사들이 쳐들어온 것으로 오해한 뒤 헛소문을 퍼뜨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현종은 놀라 또다른 곳으로 달아나려고 햇으나, 지채문이 현종을 진정시킨 후에 직접 정찰을 나가 그들이 거란의 군대가 아닌 사신임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거란이 물러났다는 소식이 현종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현종은 개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현종은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주에 들러서 지채문에게 상을 내립니다. 이때 현종이 지채문에게 내린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짐이 도적을 피하려고 급히 먼 길을 떠났는데, 나를 따르던 신하들 중 도중에 도망가지 않은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오직 채문만이 추운 바람과 눈을 맞아가며 때로는 산을 넘고 물을 건내 내 말고삐를 직접 잡아가며 나를 호위한 끝에 끝내 지켜내는데 성공했으니 어찌 내가 그에게 보답하는 것을 아까워 하겠는가"
1016년, 우상시로 임명된 지채문은 1026년에는 상서우복야로 승진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현종을 호위한 공을 인정받아 1등 공신으로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숨어있던 고려의 장수들을 알게되어 즐겁습니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지채문의 활약이 어떻게 그려질 지 기대도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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