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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강감찬 :: 실제 역사 이야기, 업적과 평가 정리!

by 꿀돈잼 2023. 11. 24.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사시간에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 대해 '1차-서희의 외교담판, 2차-양규의 활약, 3차-강감찬의 귀주대첩' 이라고 한줄로만 배우고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중 제3차 여요전쟁의 영웅이자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주인공인 '강감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감찬 초기 정보

강감찬의 처음 이름은 강은천으로, 948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기발한 지략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후 983년 12월, 36세의 나이로 과거 시험에 합격합니다. 당시로 치면 늦은 나이에 관직 생활을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관직 생활 26년 만인 1009년에 정4품인 예부시랑이 되었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그가 관직생활을 하던 중 고려에서는 993년 요나라의 1차 침입과 1009년 강조의 정변이 일어납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강감찬은 고려 조정 내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제2차 여요전쟁

강감찬은 1010년 요나라의 2차 침공을 계기로 조정의 중심으로 나서게 됩니다. 요나라의 황제 성종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일으켜 고려를 침공합니다. 이에 고려측에서는 강조를 보내 요나라 군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패전 소식이 개경에 전해지자 고려의 신하 대다수는 요나라에 항복하자고 주장합니다. (아래에서는 '강조'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려거란전쟁> 강조 :: 실제 역사 이야기, 평가 정리!

드라마 이 인기입니다. 오늘은 드라마 초반부 스토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인 '강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강조는 누구인가 강조는 '고려사' '열전'의 '반역' 전에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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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때 당시 63세였던 노관료 강감찬이 홀로 현종에게 항복이 아닌 항전을 주장합니다. "오늘의 일은 그 죄가 강조에게 있으니 근심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군세가 중과부적이니, 그 예봉을 피했다가 서서히 이길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의 건의를 받아들인 현종은 항전을 결심하고 오늘날의 전라남도 나주까지 피난을 떠납니다. (아래에서는 '현종'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 고려 현종의 업적과 역사 이야기

KBS 대하드라마 이 11월 11일 오후 9시 25분 처음 방송됩니다. 은 고려 제8대 왕 현종이 강감찬을 비롯한 영웅들과 함께 당시 최강국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려의 번영을 이끌었던 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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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고려는 후방에 건재했던 군사들이 곳곳에서 요나라군의 후방을 위협합니다. 이에 퇴로를 차단당한 요나라 군이 고려왕의 친조를 약속받고 퇴각하면서 고려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2차 여요전쟁이 끝난 후 강감찬은 빠르게 승진하며 현종이 총애하는 인물 중 한명이 됩니다. 1018년 5월, 그가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에 임명될 때에는 현종이 직접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거란 오랑캐가 전쟁을 일으켜 한장 곁에까지 깊숙이 침범해 왔을 때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 나라가 모두 야만인이 되었으리"

 

  제3차 여요전쟁의 시작

한편, 고려왕의 친조를 약속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요나라의 황제 성종은 1012년 고려에 왕의 친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고려 측은 왕이 병이 있어서 못갈 것 같다는 핑계를 댑니다. 이에 성종은 고려에 넘겨주었던 강동 6주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고려는 이 또한 무시합니다. 그러자 크게 분노한 성종은 고려의 강동6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행동을 감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고려군에 번번히 패배하게되고, 요나라는 대대적인 침공을 준비하게 됩니다.

 

1018년 12월, 요나라는 소배압 장군이 정예기병 10만을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합니다. 마침내 제3차 여요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편, 고려 조정은 1,2차 전쟁 때와는 달리 요나라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를 해둔 상태였습니다. 3차 전쟁이 발발하자 발빠르게 강감찬을 상원수로,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약 21만 대군을 거느리고 영주에 주둔합니다. 

 

  강감찬의 활약

그런데 이때 요나라는 지난 전쟁들과는 달리, 주변의 성들을 모두 무시하고 곧바로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진격하는 작전을 펼칩니다.  강감찬은 이런 요나라 군의 계획을 간파했고, 기병 1만 2천명을 흥화진 근처 삼교천에 매복시켰다가 요나라 군이 지나가자 수공을 겸한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요나라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수도인 개경을 향해 진격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감찬이 부원수 강민첨에게 군사를 주어 개경으로 향하는 요나라 군을 추격하게 합니다. 강민첨은 자주에서 그들을 따라잡아 요격을 하게 되고, 고려군은 또다시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라 군은 멈추지 않고 개경으로 진격합니다. 이들이 예성강의 상류인 마탄에 이르자 고려군은 요나라 군을 가로막아 다시 1만명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합니다.

 

또한 강감찬은 요나라 군이 개경 인근에 다다르자 개경 방어를 위해 김종현에게 기병 1만명을 주어 보냈으며, 동북면 정예군사 3천3백명을 개경으로 이동시켜 수도인 개경의 병력을 보충하는 등 수도 방어에 만반의 준비를 다합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요나라 군은 간신히 개경 근처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이미 철저하게 방어 준비를 고려군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더이상 진격할 수 없었던 소배압은 고려군에 철수한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척후병300명을 보내 정찰을 시킵니다. 개경 방어를 소홀하기 한 뒤 기습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나라 군의 척후병들은 고려군에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이에 소배압은 군사를 돌려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한 강감찬은 모든 군사들을 귀주로 총집결시킵니다. 본인도 후퇴하는 요나라 군을 청천강에서 요격하여 5백명을 죽이는 등 요나라 군을 서서히 귀주로 몰아갔습니다. 

 

  귀주대첩

1019년 2월 1일, 퇴각하던 요나라 군이 귀주에 도착하였고, 그곳에는 고려군이 요나라군과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양측 간의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귀주대첩

 

수십만에 달하는 양측의 군대는 귀주의 평원에서 대격돌을 벌입니다. 막상막하로 승패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을 때 뒤늦게 군사들을 이끌고 도착한 김종현의 고려군 기병 1만명이 요나라 군의 후방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고려의 기병들이 요나라 군의 후방으로 향하여 돌격해 들어갔고, 전세는 점점 고려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갑자기 기상이변이 일어나 요나라 군 쪽으로 역품이 불고 소나기까지 내립니다. 이 기세를 탄 고려군은 총 공격에 나섰고 그 결과 요나라 군을 크게 격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요나라 군은 10만명의 군사 중 살아남은 자가 고작 수천에 불과했으며 지휘관인 소배압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고 합니다. 

 

이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강감찬과 그의 군사들이 개경으로 개선하자 현종은 교외까지 나가 직접 이들을 맞이합니다. 이때 그는 풍악을 준비하여 고생한 장수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었으며, 금으로 만든 꽃 8가지를 직접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전쟁 이후

한편, 요나라의 황제 성종은 고려 군에게 대패하고 돌아온 소배압에게 "니가 적을 깔보고 깊이 들어가서 이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볼 것이냐. 짐이 마땅히 낯가죽을 벗겨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한 뒤 그를 관직에서 파면시킵니다. 

 

고려는 이 시점부터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집니다. 이후, 요나라와 송나라의 사이에서 세력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게 되며, 외교상의 막대한 이득을 챙기기도 합니다. 

 

한편, 강감찬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가 표문을 올려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청합니다.  하지만 현종은 이를 만류하며 오히려 그에게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었고, 사흘에 한번만 조회에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수도인 개경의 방어 강화를 위해 나성의 축조를 건의합니다. 1030년에는 고려의 최고관직인 문하시중에 오르게 되고, 1031년 8월 84세의 나이로 눈을 감게 됩니다. 

 

당시 고려의 새로운 임금으로 즉위한 덕종은 강감찬이 사망하자 4일동안 조회를 정지하였고, 또한 그에게 '인헌'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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