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에 비해서 덜 조명된 인물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려 초기 고려와 거란과의 여요전쟁은 총 3차에 걸쳐서 일어 납니다. 국사시간에는 1차-서희 외교담판/ 2차-양규 / 3차-강감찬 귀주대첩 으로만 간단하게 배우고 넘어갑니다. 오늘은 이 중 제2차 여요전쟁의 영웅이자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양규'의 실제 역사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강조 정변과 제2차 여요전쟁
1009년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당시 고려의 7대 임금이었던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합니다. 그러자 고려를 침략할 구실을 찾고 있던 요나라의 황제 성종은 강조의 죄를 묻겠다며 고려를 침공하려 합니다.
고려에서는 1010년 10월, 강조에게 30만 대군을 이끌고 강동6주의 하나인 통주에 주둔하여 요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게 합니다. 1010년 11월에 요나라의 황제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2차 여요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강조'에 대해선 아래 버튼을 누르면 보다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양규의 등장
요나라는 제일 먼저 압록강 부근에 있는 고려의 흥화진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흥화진을 지키고 있던 고려의 장수가 바로 오늘 글의 주인공 '양규'입니다. 흥화진의 고려군은 양규의 지휘하에 요나라 40만 대군의 맹공을 무려 1주일 간 막아냅니다.
당황한 성종은 성 안에 편지를 보내 양규와 그의 부하들을 회유하려 합니다. 하지만 양규를 비롯한 성의 장수들 모두가 성종의 회유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성종은 흥화진 공격을 포기하고 20만 군사는 근처에 주둔시키고 나머지 2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강조의 죽음
고려 30만 대군을 이끌고 통주에 진을 친 강조는 흥화진을 포기하고 남하하던 요나라 군과 마주치게 됩니다. 초기에는 검차를 앞세운 고려군이 요나라의 진격을 여러차례 물리치며 큰 승리를 거둡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승리에 강조는 방심하게 되고, 이때를 틈타 기습을 한 요나라 군에 생포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강조는 요나라 황제 성종의 회유를 거절하면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은 고려의 군사들은 도망치던 중 추격해 온 요나라 기병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죽임을 당한 군사들의 수가 무려 3만 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고려의 30만 주력군은 요나라 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대패하여 결국 와해되고 맙니다.
요나라의 남하
이후 요나라는 통주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에는 실패합니다. 그러자 요나라는 통주성을 포기하고 곽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군사 6천명을 잔류시켜 수비하도록 합니다. 그리고는 계속 남하하여 고려 제2의 수도인 서경을 공격합니다.
한편 고려 조정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당시 신하들 모두가 요나라에 항복할 것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감찬이 유일하게 항복이 아닌 항전을 주장합니다. 현종에게는 일단 남쪽으로 피난을 떠날 것을 건의합니다.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인 현종은 개경을 떠나 오늘날 전라남도 나주까지 피난을 떠납니다.
양규의 활약
현종이 나주로 피난을 갈 무렵, 고려의 서북면에서는 양규가 활약을 펼치면서 전쟁의 흐름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요나라군이 서경성을 공격하고 있을 때 흥화진을 지키고 있던 양규가 갑자기 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와 통주성으로 향합니다.
이후 그는 통주성에서 군사 천명을 수습하여 결사대에 합류시킨 뒤, 총 1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요나라 6천명이 주둔하고 있던 곽주성으로 진격합니다. 그날밤 양규와 그의 결사대는 곽주성에 몰래 잠입하여 성 안의 요나라 군을 급습합니다. 6천명의 요나라 군을 몰살시킨 뒤 그곳에 있던 고려 백성 7천 명을 데리고 통주성으로 귀환합니다. 곽주성의 함락으로 요나라는 중간 보급기지를 상실하게 되면서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서경과 후방에 아직 건재한 고려의 여러 성들에 둘러싸인 형세로 고려땅 한가운데에 고립된 처지가 되었습니다.
요나라의 반격
요나라 황제 성종은 고립된 상황에서 본국으로 회군하지 않고 고립을 감수한 채 서경성마저 포기하고 그대로 개경으로 공격을 갑니다. 1011년 1월, 개경에 입성한 요나라군은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합니다. 현종은 이미 개경을 빠져나와 피난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얼마 뒤 현종이 보낸 하공진이라는 인물이 요나라군의 진영에 도착하여 교섭을 시도합니다. 이때 성종은 그에게 현종이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하공진은 강남으로 가고 있는데 자세히는 모른다고 답합니다. 성종이 거리가 먼지 가까운지를 묻자 하공진은 알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자 성종은 당시 고려의 지리를 전혀 몰랐기에, 하공진의 말을 믿고 더 이상의 추격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철군을 결정합니다.
요나라의 퇴각과 고려군의 반격
철수하는 요나라군을 제일 먼저 공격한 인물은 귀주성의 김숙흥이었습니다. 요나라 군이 청천강을 건너 귀주에 이르자 김숙응은 중랑장 '보량'과 함께 요나라 군을 습격하여 1만 여명의 목을 벱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번에는 양규가 무로대에서 요나라 군을 습격하여 2천여명의 목을 베고 포로로 잡힌 고려 백성 2천여명을 구출합니다. 이어서 이수에서 2500여명의 목을 벤 뒤 백성 1천여명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다시 여리참에서 요나라 군 1천여명의 목을 베고 백성 1천여명을 구출해냅니다.
이후 양규는 김숙흥 부대와 합류했고, 부대는 애전에서 다시 요나라군을 습격하여 1천명의 목을 베는 성과를 거둡니다. 얼마 뒤 이들은 요나라 황제 성종이 이끄는 요나라 군의 본대와 마주칩니다. 이때 양규와 김숙흥은 전략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요나라의 대군에 맞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처절한 전투를 벌입니다.
하지만 전력의 열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양규와 김숙흥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전사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때 양규가 퇴각하지 않고 전멸할 때까지 무리하게 전투를 벌인 이유는, 당시 요나라 군에 포로로 붙잡혀 있던 고려의 백성들이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계속된 고려군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요나라는 퇴각하기로 합니다. 간신히 압록강을 건널 때쯤, 갑자기 정싱이 이끄는 고려군이 나타나 요나라 군을 습격했고, 그 결과 수많은 요나라 군사들이 도망치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정 리
제2차 여요 전쟁에서 양규의 활약은 엄청났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양규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한달 사이에 일곱번을 싸워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요나라 군의 포로로 잡혀있던 백성 3만여명을 구출해냈습니다. 말과 낙타, 병장기 등을 노획한 것 역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는 제2차 여요전쟁이 어떻게 묘사될지, 그리고 2차 여요전쟁의 영웅 양규는 어떻게 그려질 지 기대가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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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아 프로필 :: <고려거란전쟁> 원정왕후, 인스타, 유튜브, 고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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